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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신문 기획컬럼 "안전한 지지대 위에서 살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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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보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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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정 교수

우리에게 아름다운 수고의 이야기가 있다. 먼 옛날도 아닌데 아주 먼 이야기 같은 어머니와 아버지, 가족과 이웃 이야기다. 엄마의 젖가슴을 장난감 대신 만지며 동생에게 넘겨줄 때까지 쭈글쭈글한 마른 젖을 간식대신 자식에게 물리던 어머니, 이웃집 큰일에 아버지 어머니, 온 식구가 며칠씩 드나들며 함께 했던 그 때는 서로를 위한 수고에 익숙했다. 그래서 위험이 와도 함께하며 서로를 의지하면서 덜 불안했다. 심지어 이웃집 아이, 내 아이를 서로 봐주고 안아주고 맡아주고 그러다보니 가정에 어려움이 와도 우리는 사방의 아름다운 수고 위에서 안전했다.

오늘날 우리는 산업화로 인해 부모, 가족, 이웃 간의 ‘함께’라는 안전지대에 큰 변화가 왔다. 혼자 살아도 낯설지 않는 시대, 어쩌면 우리들의 세상이 혼자만의 지대로 변해버릴 것만 같다. 또 주변은 맘 아픈 사람, 외로운 사람,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 이유 없이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증가해 우리는 불안하고 안타깝다. 그래서일까? 사방의 아름다운 수고 위에서 누렸던 안전이 그립다. 

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을 상담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상담했던 수용자들이 그 어떤 지지대 안에서 안전이 충분히 보장되어 안정되게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부모나 누군가에 의해 적절한 훈육을 경험했더라면 지금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수용자 중 한 남자는 여자처럼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자신의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에 내려 덮고 궁금하다 싶을 때만 머리카락을 잠시 들어 쳐다보곤 했다. 이 사람은 5살쯤 부모가 불화로 헤어졌고 아버지는 일을 해야 해서 전국으로 돌아다니는 바람에 친척집과 이웃에 맡겨지게 됐다. 맞아서 두개골이 깨졌을 때도, 내쫓겨 밤늦도록 추위에 떨며 울고 있을 때도 “너희들만 없으면...”, “너희들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라는 말을 들었고 그때마다 얼굴을 감추며 울었다고 했다.


또 어떤 수용자는 외모가 아이돌처럼 보였고 하얀 피부가 돋보였다. 고개를 숙인 채 조용하고 느릿한 말투를 가진 이 사람은 어렸을 때 보육원에서 자랐는데 입양되었다가 초등학교 시절 양부모가 이혼하면서 파양되었다. 보육원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돌아가지 않고 거리의 아이가 되어 자신의 학력은 무 학력이라고 했다.

소년원을 몇 차례 드나들다 어른이 되어 아르바이트하면서 만난 여자친구와 살게 됐다. 이후 아기를 낳았고, 생활고로 아내와 다투던 중 1년도 안된 아들에게 화풀이하다 보내고야 말았다. 이 사람이 만들었던 가정은 그래서 깨졌고 단번에 혼자가 되었다. 얼핏 외모로 봤을 때는 알 수 없었지만, 끊임없이 분노가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소년원 학생들 중에 많은 경우는 부모의 갈등을 경험했거나 한 부모 혹은 조모나 조부와 살면서 가출을 많이 경험 했다. 친구들과 술·담배를 아주 일찍부터 시작 했고, 성도 이미 생활화 되어 있었다. 학생들이 결심하는 것 중에는 ‘앞으로 절도하지 않기, 술 조금만 마시기, 전화로 자신이 있는 곳 알려주기’ 등이다. 하지만 이 학생들의 결심들에 뛰어들어 지지대가 되어주거나 가정이라는 안전지대가 되어 줄 여력은 주변에 없는 것 같다. 

지인 중에 어린이집 원장이 있다. 그 원장은 어느 날 자신의 딸 이야기를 하면서 무엇이 잘못인지 물어왔다. 딸이 어렸을 때부터 엄마만 보면 매달렸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을 돌보느라 자신의 아이는 정작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었고, 아이가 아플 때조차 종일 어린이집 생활을 하게 했단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악기, 그림, 공부, 좋은 물건 등, 누구보다 최고로만 아낌없이 공급해 주면서 자신보다 우선 딸의 장래에 투자 해 왔다고 했다. 그런데 마음을 몰라주고 지금은 알 수 없는 원망만 하는 딸과 대화가 안 통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최소한 딸에게 아름다운 수고의 어머니로 인정받고 싶어 했다.

힘들다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다. 분노조절이 안되어 묻지 마 범죄자도 여기저기 서 우리를 위협한다. 일부는 사회변화로 인한 현상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각자의 성격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상처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것도 힘없이 내몰렸던 불안과 두려움의 그 자리에 갇혀 아직도 아파한다. 주변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패턴을 보이면서 스스로를 점점 더 고립시켜 거기 머물고 있다. 꼭 찾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그 때에 그토록 간절했던 아름다운 수고를 아직도 그리워하면서.
   
윌리암블라츠(1940)는 어린 유아와 아동들은 부모에 대한 안정된 의존성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인즈워즈(1940)는 가족에의 안정성을 통해 인간에게 있어 안전기지 개념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오귀스트 꽁트(1798-1857)는 사회를 현대적 의미의 개인이 출현할 수 있는 토양으로 규정했는데, 즉 사회의 성격이 어떠한지에 따라 개인의 속성이 결정된다고 했다. 우리 인간들은 안전한 지지대를 갖고 싶어 한다. 안전한 지지대 위에서 살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일찍이 우리는 누군가의 수고를 덧입고 존재가 된 은혜 입은 자들이다. 그러니 내 생애의 일부분을 함께와 서로라는 이름에 조금 내어 준다고 별 손해 볼 것도 없다. 그 모든 수고가 언젠가 나를 지켜주는 안전지대가 되어줄지 누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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